소설지망생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

소설지망생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꼭 필요한 이야기만을 적절한 비율로 배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구상 단계에서 당신이 또 한 가지 신정을 써야 할 일은 되도록 불필요한 이야기를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을 처음 써보는 사람일수록 되도록 많은 에피소드를 소설 속에 집어 넣고 싶어한다. 모처럼 찾아낸 그 일화 중에 단 한 가지라도 빠지면 소설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자칫하다가는 이야기가 본래의 길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지리멀렬한 내용이 되버리기 쉽다. 이럴 때 소설을 쓰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불필요한 에피소드를 과감하게 잘라버리는 일이다. 그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진징한 용기는 불필요한 것을 버릴 줄 아는 즉 과다한 욕심의 억제에서만 얻어진다. 이러할 때 소설의 구성에 가끔 등장하는 삽화에 대해 고민하 필요가 있다.

소설을 쓸 때는 힘을 빼야 한다.

한 가지 예로 삽화를 넣는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소설을 쓰다가 보면 삽화가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테 그것이 없여서는 안 될 것처림 끌어 안아 필요 이상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보면 아주 빼버리거나 넣더라도 작게 처리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불필요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들이가 그 작품의 유기적 결합에 결정적 장애요인으로 작용됐음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즉, 주변적인 이야기에 빠져 본질적인 이야기 또는 의도한 바의 주제의식으로 작품이 흘러가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는 것을 막지 못 했다는 뜻이다.

구상이 잘 된 작품이란 주변적인 이야기를 적당히 배분하여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를 살리기 위한 일에 보탬이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것이 바로 핵심화의 윈리인 것이다. 잘된 소설이란 바로 핵심화의 원리에 따라 모든 사건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인물과 배경 등이 서로 끌어당겨 필요로 하는 관계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탄탄하고 정밀한 구상이 중요한 이유

소설의 구상 단계에서 핵심화의 윈리를 문제삼는 것은 작품을 이루는 이야기 리듬에 동일성 있게 배열하여 이른바 형식과 내용이 나누어질 수 없는 완벽한 구조의 형상화를 지향하는 작가의 장인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작가가 되려는 당신에게 강조하기 위함인 것이다.

소설의 구상 단계에서 이미 ‘무엇을 쓸 짓인가’에서 가장 잘 아는 것은 중요하다. 즉 자기가 유리한 지점에서 숭부를 해야 싸움에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강점을 살려 독자를 몰입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호랑이와 악어의 싸움에서 그들은 서로 유리한 곳으로 적을 끌어들이려고 할 것이다. 호랑이는 물 밖에서 싸우려 할 것이고 악어는 호랑이를 무슨 수를 쓰더라도 물 속으로 끌어들여야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작가와 씨름을 한다. 소설가 지망생이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재능이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데 적절한 것인가 자신의 장기를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이른 시간에 파악하여 그 방면으로 넓고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장르에 대한 고민은 필수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당을 찾아야 한다. 판소리 한 판에 춤사위가 한껏 흥겨운 마당에 오페라 가수가 한 곡 해봤자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이 변하다. 관현악단이 장중한 음악을 연주하는 자리에 뽕짝이 가당치 않은 것처럼 그 소리가 어울리고 먹혀들어갈 자리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록 소리가 먹혀들어갈 그런 자리, 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당신이 여러 시간을 고민하게 되는 것도 바로 소설의 구상 단계인 것이다. 다만 구상 단계에서 당신이 유념해야 할 것은 당신이 쓰려는 소설의 톤(tone)을 결정하고 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구상하고 있는 그 이야기를 어떤 색조, 분위기로 이끌어 나갈 것인가를 소설의 구상 단계에서 분명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림의 바탕색과 같은 것으로 쓰려는 그 이야기의 주제와 전개의 방항성이기도 하며 등장인물들의 윤명을 암시/예언하는 역할도 한다.

소설지망생이라도 자기 색깔은 필요하다

소설지망생은 자기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남의 좋은 작품을 읽으면 자기도 그렇게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현장체험이 중시된 그런 사실적 수법의 소설을 읽으면 자기도 그런 방법으로 쓰고 싶고 감각이 현란하게 구사된 소설을 읽을 때는 또 그렇게 써보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것이다.

다분히 칠학적인 분위기를 가진 관념소설을 읽으면 독자들이 바로 이런 지적인 것을 찾아 목말라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들며 당장 그런 소설을 쓰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모한 일이다. 당신은 인생과 사회를 총체적으로 재구성 해 새롭게 보여주려는 작가이지 만능의 목소리로 연기하는 연기자가 아닌 것이다.

물론 습작 과정에서는 이런저런 것을 모두 탐색하는 것이 그리 나뿔 것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습작 과정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은 작신의 목소리가 어느 마당에 어울린다는 것쯤은 알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일찌감치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작가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하는 것을 미리 아는 짓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번뜩이는 발상이 떠오르고 구상도 빠른 시간에 이루어졌다고 해도 한 번 도 고민해야 한다. 다만 구상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안 됐다는 말을 들이본 적도 없다. 집 짓는데 안정적인 설계가 필요하듯 구상은 당신이 쓰려는 소설의 뼈대와 그 살을 붙이기 위한 성찰과 판단의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시간이 길고 신중할수록 좋다는 것을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