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무엇인가? 생각과 견해.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은 체험과 상상이 빚은 거짓말 이야기다. 물론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지만 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소설이 무엇인가 하는 자문에 대해 그것이 거짓말 이야기라는 사실을 자기 자신에 게 확인시커야 한다.

남을 속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 누가 뭐래도 소설은 독자를 속여먹기 위해 꾸머낸 이야기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쯤에서 성급히 그 거짓말은 참말의 반대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참말 그 이상을 내포한 또 다른 [진실]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거짓말에 대한 미화는 계속된다. 선의의 거짓말을 생각해 보라. 상대를 위해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부득이한 경우의 거짓말도 있지 않은가. 더 나아가 그 거짓말은 허위의 뜻도 아니머 사실은 더욱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보다 더 보편직이고 개연성 있는 진실이다.

소설은 거짓말도 필요하다

소설을 쓰기 위해선 있어야 할 거짓말 드디어는 거짓말의 필요성까지 강조하게 될 것이다. 옳은 이야기다. 소설은 선의의 거짓말이요 그 허구의 세계는 인간이 사는 현실 생활에서 선택된 제재에 의해 이루어진 세계이기 때문에 현실을 굴절시켜 반영하는 [진실한 거짓]인 것이다.

이 말은 소설을 올바로 이해하고 제대로 감상하는데 절대적 지침이 된다. 그러나 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그리한 소설의 정의에 귀를 솔깃하여 짐짓 점잔을 빼기에는 아직 이르다. 당신은 결코 선의의 거짓말을 하려고 소설을 쓰는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고지를 앞에 놓고 앉아 있는 당신은 회심의 미소를 입가에 홀리고 있다. 그렇다. 당신이 하는 거짓말은 때로는 칼이다. 경우에 따라 당신은 색소를 넣은 사탕을 무기로 쓰기도 한다. 때로는 껄껄웃음으로 위장하기도 하며 명치를 치받쳐 오르는 울음으로 거짓말을 한다. 더구나 당신은 지금 남을 속여넘기는 일을 업으로 삼아 그 일을 본격 적으로 즐기려 하는 것이다.

소설은 선과 악이 공존한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에게는 분명 어떤 악의가 있어야 한다. 인간을 해치려는 그런 악의가 아니라 인간이 믿고 있는 오면 생각 이를 테면 전통적 규범이나 도덕과 가치를 다른 각도로 휘어놓거나 아예 무시하려는 그런 부정의 정신을 말한다.

그 부정의 기미를 전혀 내색하지 않는 시치미 떼기, 감쪽같이, 능청스럽게 속여넘긴 다음 그것을 믿게 하는 그런 악의 말이다. 감쪽 같음, 능청스러움 그것이 바로 소설의 얼굴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을 참말이 아니라고 믿게 하려는 이야기가 소설이다.

악의가 아니고 반역이 아니고 어찌 이제까지의 참말을 뒤 집어옆을 수 있겠는가? 그를 아는 사람 모두가 심지어는 그의 부모까지도 그가 죽어 없어지기를 바라는 그런 구제 불능의 악덕한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그가 당신들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소설이다.

이때 당신은 어차피 거짓말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을 판별하는 이때까지의 사회적 조건이나 인식을 뒤 집이 잎으로는 악의가 없이는 어림도 없는 거짓말이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은 당신 속에 들어 있는 그 어떤 것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봐야 한다.

당신이 꾸며내는 거짓말 이야기, 그것은 당신 자신 의 이야기다. 소설가는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소설을 통해 자신을 다 풀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고 남의 치부나 남의 그릇된 생각을 들춰내기 위해서 이야기를 꾸며 내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 경우도 자기 생각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의 들취냄이 있을 뿐이다. 이럴 때 [가치 있는 체험의 기록]이 문학이라고 말한 최대서( )의 말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당신이 하려는 거짓말 이야기는 당신의 체험을 토대로 했을 때라야만 상대를 감쪽같이 속여넘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은 과장이다

‘그 여자와 그 남자는 매우 애틋한 사랑을 했다’ 또는 ‘전쟁은 비극이다’ 등등의 단순한 진술을 위해서 소설가는 오랜 시간을 공을 들여 수백장 혹은 수천장 분량의 이야기를 꾸며낸다. ‘아아, 괴로워’ 그 말 한마디면 족할 것을 중언부언 그럴싸한 말들을 끌어다 자신의 내면이 매우 복잡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그 괴로움이 결코 단순하고 저급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 노력한다.

다행히도 독자들은 계산된 거짓말(정치꾼의 심각한 얼굴은 그 좋은 예다)보다는 과장된 거짓 맡에 더 호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것은 어차피 거짓말이요 과장된 것이라는 생각이 독자를 어떤 부담으로부터 해방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바로 그 심리를 역이용한 짓이다. 이 과장된 거짓말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걸어 들어가 감동의 눈물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좋은 소설이란 자기가 읽은 그 소설이 결코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착각을 일으켜 현실 그 이상을 생각하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럴 듯하게 과장된 거짓말을 의미한다.

또한 소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거의 잊혀 가는 어떤 사건을 선택한 다음 비록 어제의 것이지만 이것만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다소 과장된 방법으로 뭔가를 환기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이미 오래 전 별것 아니라고 버렸던 지난 어느 날의 그 일이 이처럼 흥미 있게 또는 이처럼 심각하게 재현되었다는 사실에 놀라 그것이 꾸며진 이야기, 과장된 이야기라는 사실을 검정에 잊기 마련이다.

소설은 반성의 형태다

소설은 반성의 한 형태다. 자신의 자잘한 마음 움직임에 대한 돌아봄에서부터 우리 이웃들의 사는 방식에 대해서도 또는 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서 반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소설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이쯤에서 우리는 당신이 그처럼 거짓말로 꾸며내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결국은 어떤 인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지를 탐구하게 된다.

당신은 어떤 인간이 이러한 상황에 이렇게 대처해 나갔으며 급기야는 그 상황을 이런 의지로 바꿔놓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상황이 인간을 이 지경으로 만들이 놓을 수도 있다는 짓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당신은 짐짓 그 어떤 상황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 어떤 상황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 그만큼 깊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결국 당신은 그 인간들이 만든 상황으로 인해 이 지경이 된 것을 우리가 모두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됐을 것임이 분명하다.

소설의 성공과 실패는?

실패한 소설이란 대부분 작가 자신이 사랑하지도 않는 그를 독자에게 내놓고 이 사람이야말로 당신들이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란 발언을 소설 속에 끼워 넣는 경우다. 성공한 소설은 모두 이러한 인간의 의식을 그려내겠다는 인물 창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것보다 앞서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당신이 만들어 내려는 이러한 인간의 의식이 그 작품의 분위기와 당신이 노리고 있는 사건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소설의 인물에 대해서는 다른 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진술하게 될 것이다. 소설은 상상의 산물이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은 무엇보다 당신의 상상력을 믿어야 한다.

당신이 하려는 거짓말 이야기, 당신이 만들어 내려는 인물은 모두 당신의 상상력에 의해 얻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물론 문학적 상상력은 칸트의 분류에 따르지 않더라도 단순히 과거 감각의 인상을 그대로 재생해 내는 것이 아니라 체험과 경험에서 유추된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세계를 지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창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