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매력은 은은함 주제를 드러내지 말자

여러 작가의 소설 발상에 대해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주제와 주에의 성격에 따라 소설의 발상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설이 처음부터 어떤 거창한 명제를 가지고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체험 속에서 문득 어떤 사실을 환기 시킬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고 기억해두게 되면 그것이 적당한 시기에 소설로 형상화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은 소설 발상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그 어떤 방법을 찾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고 이것은 소설이 될 수도 있겠다는 그런 특이점을 가진 이야기, 그런 상황, 그런 인물, 그런 생각을 찾아 기억해두는 습관을 기르도록 노력 할일이다.

문체는 평범 속에서 비범한 것을 찾아내 의미를 부여하는 그러한 작가의 눈을 갖는 일이다. 보고 듣고 겪는 모든 일에 사랑을 가지고 임하는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은 그런 관심으로 사물을 바라 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설을 쓸 때 필요한 발상이란?

발상은 다분히 영감적이고 직관적이다. 또한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실제 체험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마치 신기루 같은 것이어서 잘 잡지 않으면 그냥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는 본래의 모습을 영영 되찾지 못한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실제로 발상이 됐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소설로 발전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십 개의 발상 중에서 소설로 형상화되는 것은 한두 개에 불과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하고 흥분했던 발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그 빛을 잃어버린 끝에 드디어는 완전히 잊혀지고 마는 경우가 필자의 창작노트에도 얼마든지 남아있다. 발상된 것이 곧바로 소설로 발전 되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은 일이다.

아이디어를 불러 일으키는 발상

대개의 경우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날 느닷 없이 ‘아, 그건 쓰면 되겠구나’하는 강력함을 휩쓴 뒤 거기에 살이 많이 쌓여서 시작하는 그런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떠오른 생각은 다시 메모해 두지 않았으면 벌써 잊혀졌을 그런 것이라 새삼 메모의 필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든 계시처럼 떠오를 발상이 모두 소설이 되지 않고 취사 선택의시간을 가져야 재료가 된다는 것은 창조되는 않는 것의 속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발상은 창작의 동기일 뿐 창작 그 자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즉, 산수풍광이 좋은 곳의 남향받이 빈터를 보고 이곳에 집을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집이 지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 골조에 살이 붙기 시작하는 그 즐거움이 바로 창작의 두번째 즐거움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생각해보라. 문득 이것이 소설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무심히 메모해두었던 것이 어느 날 불현듯 상상의 낱개를 달고 자유분방하게 피어오르는 그 유영을 말이다.

은은한 주제표현이 소설의 미덕이다

시작이 반이란 말도 바로 이렇게 발상이 소설로 발전되는 단계를 의미한다. 이는 기쁨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이때부터 그 누구도 들어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찾아 들어가는 당신의 가슴 뛰는 소리만이 들리게 되리라. 소설을 쓰려는 당신은 하나의 우주다. 그 우주에서 새로운 세계 하나를 만들기 위해 당신의 신명나는 작업, 그것을 우리는 구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분명한 주제의식은 중요하다. 이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를 분명히 하라는 이야기다. 자기가 꾸며 내는 거짓말에 어떤 의미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왜 그런 거짓말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가를 자신의 마음 속에 새겨 두고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작가의 의도가 없이 쓰여진 글은 그야말로 한낱 거짓말 이야기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혼이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의 눈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살아있는 이야기, 진실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주제의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구상은 이러한 주제의식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제시하느냐 하는 고민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즉 주제의식이 아무리 분명하다고 해도 그것이 적절한 방법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습작 과정에 있는 작가 지망생들이 종종 주제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그것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주제의식의 빈약도 문제지만 주제의 노출은 더 안 좋다고 본다. 주제가 빈약한 것은 그런대로 읽는 사람에 따라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지나치게 명시적으로 보여 준 주제는 소설의 형상화를 방해하는 가장 분명한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제를 전면에 드러내지 말자

주제를 분명히 하라는 말은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라는 얘기와는 문맥이 다른 이야기다. 수필문학을 흔히 주제의 구조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쓴 사람의 의도가 그 글 어느 부분(주로 끝에)에 분명히 명시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물론 소설에도 지문이나 등장 인물들의 대화 속에 작가의 의도가 의도적으로 배치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주제의 극히 미세한 일부분일뿐 전부는 결코 아닌 것이다. 소설의 주제는 수필처럼 이 이야기는 바로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라는 걸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며 가시적인 것은 더육 아닌 보다 암시적이고 함축적이며 복합성을 필요로 하는 성질의 것이다. 분명한 것은 소설의 주제는 작품의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끝에 있는 것도 아닌 그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중심원리로서의 어떤 힘 같은 것이다.

물론 그것을 쓴 사람의 인생관이나 현실에 대한 어떤 인식이 주제를 이루는 중요한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자체를 그 작품의 주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의식은 분명히 그러나 당신이 만드는 이야기 속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하려는 말과 노출시키는 주제의 성질은 다르다는 일이다. 독자들이 소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말하고 싶어하는 그 무엇에 대해서는 당신보다 여러 면으로 또 더 깊이 알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독자는 우리 생각보다 더 똑똑하다

독자들은 당신이 말하고 싶어하는 그것(주제)의 전문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그럴듯한 말로 그 당장은 그네들을 현혹시킬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독자들은 잠시 당신 곁에 머물 뿐이다. 그네들은 항상 당신의 머리 위에서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독자와 섣불리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것이 좋다. 당신은 가끔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럴 때가 위험하다. 당신은 사상가도 철학가도 정치쟁이도 아니란걸 명심할 일이다. 주제에 대한 강박감이 당신을 철학가로 사상가로 착각시킬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오직 당신이 만드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과 겨뤄야 한다.

당신이 혹은 독자들이 그처럼 신경쓰는 주제를 당신 자신만 아는 방법으로 슬쩍(그러나 의식은 분명하게) 당신의 원리를 쓰려는 이야기 속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즉, 당신이 하려는 말이 당신의 특기인 이야기 속에 스며 들어 확산되도록 하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될 때 독자들은 당신이 만든 이야기 속에서 섣불리 주제를 꺼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이야기 속에 풀어 놓은 그 주제는 보다 은밀한 모습으로 그 이야기가 주는 감동과 함께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열명의 독자가 당신의 이야기를 읽었으면 이제 당신의 의도가 열가지 이상으로 확대 됐다는 생각을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당신이 만든 이야기가 소설답게 형상화됐을 때의 애기다. 당신이 쓰려넌 소설의 주제는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