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소설가의 생각과 자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밑천 삼아 많은 작가들이 유소년 시절의 체험을 떠올려 소설쓰기의 힘을 삼고 있다. 정서적으로 가장 예민한 시절에 겪은 일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뿐더러 강한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렇게 각인된 기억은 훗날 작가가 되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야기거리인 것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당신은 이용이 가능한 당신의 과거를 보물처럼 다룰줄 알아야 한다. 당신의 유소년 시절은 당신의 과거 중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이다. 당신 체질과 개성을 결정적으로 완성시킨 유소년 시절의 기억들은 당신이 쓰려는 모든 이야기의 단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소년 시절의 어떤 기억들이 바로 당신이 찾고 있는 몸에 맞는 그 무엇을 결정짓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당신의 일기장이 바로 그 무엇의 단서다. 당신이 쓰고 있는 일기장 속에서 당신이 쓰려는 그 무엇을 쉽게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일기는 가장 절실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난 것이 일기가 아니겠는가?

정말 좋아했던 어떤 일, 죽기보다 싫었던 어떤 기억, 증오, 연민, 환멸, 회의 등등 쉼게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반성의 기미를 보이면서 기록된 것이 당신의 일기인 것이다. 당신의 일기 속에 들어 있는 어떤 것 하나를 택해 소설을 만들 떼 당신은 신명이 날 것이다.

평소 당신을 괴롭혀온 어떤 죄의식이 일기장을 뛰쳐나오면서 당신의 상상력은 겁도 없이 무한정 펼치지기 시작하는 그 즐거움, 그것이 바로 당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일는지도 모른다. 열등 컴플렉스를 무기삼아야 한다.

우리는 소설을 왜 쓰는가?

왜 쓰려는가? 하는 자기 질문을 통해 확인했듯이 소설을 쓰려는 당신에게는 열등감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남다른 노력이 소설쓰기로 나타났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열등한 어떤 문제로 인해 치유되기 어러운 상처를 입었다.

이제 당신은 그 상처를 무기삼아야 한다. 그 상처는 오직 당신만이 잘 아는 문제로서 그 이야기라면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지 않은가? 부모를 일찍 잃은 아이가 자립심이 강하고 매사에 도전적이듯 당신은 소설쓰는 일을 통해 당신을 괴롭혀 온 그 열등 컴플렉스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상상력을 통해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쓰는 일로 당신은 모든 것을 보상 받을 수 있다. 그 당시의 형편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도 없었던 자신이지만 이제 소설 속에서 뜨겁게 사랑할 수도 있으며 통쾌한 복수의 칼을 들이밀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는 소설을 씀으로써 그 소설 속의 인생을 새로이 사는 것이나 다름 없다.

연애소설의 명수인 작가에게서 사랑 컴플렉스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랑에 대한 갈구가 연애소설을 만드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슬픔, 기쁨, 아름다운 추익, 어떤 사물에 대한 혐오감이 당신이 만드는 소설의 끈끈한 접착제가 될 것이다.

자신의 삶에 소설이 있다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안에서 가족사에서 이웃들의 삶 속 에서 더 넓게는 우리 민족사의 비극 자체가 당신의 열등 킴플렉스가 되어 당신의 상상력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관심을 지배하는 그 인물에 대해서 써라. 소설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어떤 인간에 대해서 써야 좋은 소설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당신이 지금까 살아오며 만남을 가졌던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잘 잊혀지지 않는 사람, 이를테면 사랑했던 사람, 주는 것 없이 미원던 사람, 그 생각이나 행동이 좀 별났던 사람을 떠올릴 일이다.

당신이 어릴 때 살던 고향 마을의 마스코트 같은 유명인사라든가 마을을 벌컥 뒤짚어 엎었던 어떤 인물, 마을에 소리 없이 숨어 들어 당신에게 신비감을 안겨주고 홀연히 사라진 그 사람, 그러나 지금은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새로이 할 필 요가 있다.

당신이 쓰려는 그 무엇의 모델은 항상 당신 가까이 있는 그 사람으로 하는 것이 성공할 확률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기가 달라붙었던 무언가 필요에 따라 자주 바꾸기도 한다. 보다 새로운 것을 찾고 싶은 작가적 욕구 때문이다. 그 것은 독자의 반응이 결정적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아무리 몸에 맞는 옷도 철 지난 옷은 그것을 입은 사람이나 보는 쪽이나 모두 불편하기 마련인 것이다. 작가들은 대부분 고급 독자(비평가)의 반응 혹은 의미부여에 의해 새삼스레 철에 맞는 자신의 웃을 바꿔입듯 자신의 의식을 변형 혹은 성숙시켜가는 일에 게으르지 않다.

어떻게 해야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무엇을 써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고민 속에서 당신이 만나게 될 다음 작가들의 작품들은 우선 당신을 절망시킬 것으로 생각된다. 보통 독자들에게는 그 작가가 밝힌 그 무엇의 절실함이나 전문성이 그대로 소설 읽기의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겠지만 소설을 쓰려는 당신이 필요에 의해서 하는 독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확인 하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을 쓰려는 당신은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대체로 성공한 작품들이 갖고 있는 힘을 확인하는 작업에서 그 절망이 곧 유일한 기회라는걸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작품들을 통해 그들이 자신의 품에 맞는 옷을 입기까지 그 문제에 얼마나 진지하게 몰입했는가 하는 것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은 소설 공부가 되리라고 믿는다.

그들이 선택한 그 무엇이 그대로 그네들 소설의 방법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쓰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억누르는 일도 좋은 소설 공부라고 생각 한다. 쓰고 싶은 그 욕구를 지그시 누르고 우선 오늘 우리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는 다음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일부터 시작할 일이다.

물론 다음에 주어지는 작가와 작품들은 당신의 독서 편의를 위한 극히 제한적이고 주관적인 선택임을 밝혀둔다. 그러나 소설 작품들을 읽음으로써 당신은 오늘 우리 한국문학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동시에 우리 소설의 체취를 당신의 것으로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리라고 믿는다.

번뜩이는 발상이 소설에 중요한 이유

소설을 쓸 때에는 발상이 좋아야 한다. 물이 스스로 길을 만든다. 땅 속의 물줄기가 위로 솟은 것이 샘물이다. 샘물은 웅덩이를 채웠다가 넘쳐 흐르면서 골을 이뤄 다시 시내를 이루고 강줄기를 만든다. 물의 양이나 그 흐름에 의해 강줄기가 바뀌기도 한다.

물길이 처음부터 있었고 그 길로 물이 홀러 간 것이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물은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자신이 뚫기가 좋은 그런 지층을 골라 흐른다는 사실이다. 더 분명한 사실은 물이 스스로 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을 만들어 흐르는 물이다.

소설 쓰기도 마찬가지다. 소설 쓰는 어떤 방법이 따로 있고 그 방법에 의해서 모든 소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좋은 소설은 모두 그 하나 하나가 방법인 것이다. 소설을 만드는 것은 그 어떤 방법이 아니고 그 어떤 방법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거리와 그 이야기에 감춰져 있는 작가의 어떤 의식인 것이다.

자기가 읽은 그 작품의 작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것이 도대제 이떤 동기에 의해 쓰어졌는가를 반드시 물어보리라 벼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그 작가가 쓴 작가노트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그 작품이 쓰여진 경위를 알고 싶어한다.

독자들의 이러한 소설 발상에 대한 관심은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 하고 싶은 무의식적 욕구인 동시에 자신이 빠져든 그 것짓말 이야기에 대한 신뢰를 후회하지 않으려는 소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소설쓰기의 시작은 관심이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이 소설에 대한 관심을 깊이 가져야 한다는 것은 소설쓰기의 가장 기본적 자세라고 생각한다. 열 편의 소설은 각각 다른 열 개의 발상에 의해 만들어진다. 작가마다 체질과 개성이 다르듯 소설쓰기의 그 발상법도 각각 다를 것이다.

같은 작가라 해도 그 작품 하나하나의 발상이 모두 다르다고 봐야 한다. 모든 소설은 각각 그것만의 독특한 발상 내력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 것이다. 이쯤에서 당신은 소설을 쓰는 어떤 발상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 읽은 그 작품들이 어떤 발상에서 비롯됐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당신이 지금까지 좋은 소설을 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우습게 흘려버렸다는 것을 무릎을 치며 아쉬워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정말 별것 아닌 일에서 그 작품들이 소설로 발전 되었다는 것을 놀라운 마음으로 확인해야 한다. 도대체 어떤 아이디어가 소설로 발전될 수 있는가. 그 아이디어는 막상 소설로 발전되는 과정에 어면 형태로 탈바꿈했는가? 하나의 아이디어가 발전 되기까지는 얼마만한 시간이 필요했던가?

생활 속에서 얻는 소설의 소재

작가로서 갖게 되는 첫번째 기쁨은 이것이 바로 소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다. 그것은 대체로 느닷 없이 영감처럼 오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대중목욕탕에서, 술 한잔 걸치고 올라 탄 만원버스 속에서, 정말로 숨 넘어가게 바쁜 일터에서도 떠오른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술 자리 그 시시껄렁한 대화 속에서, 가족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이 웃집의 딱한 이야기 속에서, 무심히 전해 듣게 된 중학교 어느 동창 의 별난 인생에서, 신문의 삼단기사 몇 줄 그 문맥에서, 자신이 좋아 하는 그 사람을 생각하는 그 달콤한 시간이 주는 아이디어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사회 문제가 특히 가정 파괴범의 그 파렴치한 인간포기의 흉악성에 대한 치떨리는 분노가 느닷 없이 당신이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어떤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다.

예컨대 몇몇 작가의 작품 발상을 살퍼보는 과정에서 특히 실제로 그 작품을 찾아 읽는 동안에 당신은 영감처럼 떠오르는 것, 이것을 쓰면 소설이 되겠구나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의해 홍분 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확신한다. 신인작가부터 오래된 소설작가에 이르기까지의 소설 발상에 대한 이모저모를 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