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기 위해 일기를 쓰다 나의 경험담

소설을 쓰기 위해 일기를 쓰다 나의 경험담을 남겨보려 한다. 무언가를 쓰는 일은 자기 구제의 길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일기는 소설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떤 절실한 욕구에 의해 시작된 소설 쓰기는 그 욕구에 값하는 즐거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어렸을 때 어렵게 얻은 하모니카를 밤낮 없이 입에 물고 누가 듣건 말건 입술이 부르트도록 그것에 도취된 것처럼 작가들은 그런 열정으로 소설을 쓰는 일에 미처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매일 쓰던 일기가 하모니카가 되기도 한다.

하모니카의 음색을 고르는 그 묘미에 취하듯 작가들은 쓰는 즐거움을 즐겨왔다는 말이다. 좋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 소설이 구상되는 과정의 소화불량을 동반하는 그 고뇌와 절망, 아울러 체력이 따라야 하는 그 긴 시간의 집필 노동까지도 쓰는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소설을 쓰기 전 일기가 중요한 이유

소설을 쓰기 위한 기본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매일 일기를 써야하는 이유기도 하다. 소설 쓰는 일에 미쳐보지 않은 사람은 그 쓰는 즐거움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 일기는 가장 기초적이며 근본적인 글쓰기의 한 형태이다. 작가들은 다른 어떤 일보다 일기 쓰는 일을 통해 재미를 보아왔던 것이다. 그 재미가 그 문학이 그네들의 영혼을 구제했다.

그렇다. 문학은 자기 구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기 구제의 시작은 일기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을 쓰는 사 람은 그 쓰는 행위가 그 사람의 삶을 지배할 수 있을 때 그 문학은 참된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기 구제의 길이 보인다고 생각됐을 때쯤에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과 사회를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치 하모니카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다음에 그것을 들어줄 상대를 찾아나서듯, 우선 쓰는 즐거움을 만끽한 다음 자신이 쓴 글이 누구에게 어떤 울림을 일으킬 것인가를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는 애기다. 작가는 먼저 자기가 만드는 이야기에 감동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 그것이 바로 글쓰는 즐거움의 시작인 것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 그 자체가 이미 감동이기도 하다. 감동이 크면 클수록 작가는 그 감동을 공적인 것으로 확대해 전달 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독자를 의식하는 자기가 쓴 것을 누구에겐가 읽히고 싶은 바람이 글 쓰는 또 다른 재미로 바람나게 한다.

잊혀진 기억을 떠올려주는 일기

예전에 겪은 일을 다시 상기시킬 때 일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전에 직접 겪은 일이다.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재주, 그런 재능을 야금야금 즐기고 있는 사람을 우리는 작가라고 부른다. 문학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에게 소설을 쓸 수 있는 재능이 있는가 하는 문제다. 소설가 지망생인 한 남자는 필자 앞에 습작한 소설 한 편을 끼내놓으며 말한다.

‘읽어보시고 저한테 소설울 쓸 수 있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재능이 있다고 하면 머리를 싸매고 사생결단 달라붙을 것이고 만약 재능이 없다고 하면 포기하겠다는 얘기다. 그럴 때 필자는 참으로 난감하다. 작품을 나한테 들고 올 정도면 벌써 병이 꽤 깊은 단계인데 작품 한 편으로 자신의 재능을 점검하고자 하는 그 생각의 경솔함이 우선 섭섭한 것이다.

더구나 그 한 편을 읽은 내 말 한마디로 자신의 인생항로를 결정 짓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보니 작품 읽기부터가 두럽다. 그런 경우일수록 작품이 신통치 않기 마련이다. 그 작품을 읽기 전에 필자는 그 남성에게 문학적 재능이란 그렇게 쉽게 판별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해 준다.

필자의 경우 작가가 되어 작품을 꽤 많이 쓴 지금까지도 늘 불만인 것이 내게 문학적 재능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그것이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작가들 대부분은 작품이 잘 안 쓰여질 때마다 자신에게 소설 쓰는 재능이 없다는 절망감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어떻든 그 남성의 작품을 정성껏 읽은 뒤 그 부족함을 솔직히 지적해 준다. 포기할 수만 있다면 그까짓 소설 같은거 안 쓰는 게 좋다는 투로 말 속의 말을 한다. 눈치가 빠른 그는 낙심천만인 얼굴로 돌아 간다. 만약 내 말로 그가 소설 쓰기를 정말 포기하게 된다면 필자는 환자 한 사람을 고친 셈이 된다.

그러나 얼마 뒤에 필자는 그 남성이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작품을 가지고 가 다시 재능이 있고 없음을 확인 하려 했음을 알게 된다. 그 남성은 이미 중증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소설을 쓸 수 있는가 하는 것을 확인하는 일로 평생의 시간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끝없이 외로운 길에 이미 들어섰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길을 바로 잡아 치열하게 달려가기 위해 당신은 어쩌면 일기를 매일 쓰고 자신을 돌아봐야할지 모른다. 글쓰기에 끌림이 작용하는지 아닌지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글쓰기가 좋다면 우선 일기를 쓰자

더구나 지금 당신은 ‘왜 쓰려고 하는가’를 놓고 심사숙고하고 있는 많지 않은 사람 중의 하나다.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당신에게는 당신이 그처럼 확인하고 싶어하는 문학적 재능이 있다. 어떤 끌림, 이를테면 어면 운명적인 것이 당신의 내부 깊숙히 스며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아는 일이 문학적 재능 확인의 시작이다. 매년 신춘문예 시즌만 돼도 설레는 가슴, 다른 사람은 모두 무덤덤한데 왜 당신 가슴만 설레야 하는가? 그 가슴 설레임이 곧 문학적 재능의 징후다. 뭔가 풀고 싶은 강렬한 욕구, 쓰는 일로 그것을 풀어낼 때 신명을 낼 수도 있다면 당신에겐 문학적 재능이 넘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착, 소설을 읽다가 문득 어느 낱말에, 혹은 좋은 문장에 매료되어 긴장하는 당신의 소설 문장에 대한 관심이 곧 문학적 재능이기도 하다. 그런 재능이 소설 쓰기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작두 위에서 춤추는 무당의 그 괴기스러움을 생각할 일이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은 이미 무당인 것이다. 당신은 지금 내림굿을 하기 직전 앓아 누위 있는 예비 무당이다. 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그리고 한 번 시작한 일은 철저하게 달라 붙는 그런 치열성이 곧 장인의식이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의 그 끈질긴 근성이 문학적 재능이다.

어떤 절실한 것이 당신의 장인의식과 만났을 때 당신의 상상력은 한껏 신명이 날 것이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은 평범한 것을 평범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율 것이다. 오히려 당신은 별나다는 것을 평범한 것으로 보기를 즐기는 편이다.

풍부한 경험이 좋은 소설의 재료가 된다

게다가 당신은 남보다 앞질러 생각하기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남들이 애써 감춘 것을 들춰내는 악취미도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당신은 아주 작은 문제를 크게 부풀려 생각하기를 좋아하거나 그 반대로 큰 것을 되도록 축소시켜 연상시키는 일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소설을 쓰려는 당신의 문학적 재능이다. 재능은 훈련에 의해 개발되는 경우가 더 많다. 소설을 쓰는데 필 요한 재능이야말로 그렇게 훈련된 재능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떤 요령에 의해 문학적 재능이 개발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맹목적 노력에 의해 재능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어떻든 당신은 소설 쓰는 일이 아니고서는 이 세상을 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 그런 정신으로 시작할 일이다. 물론 심심풀이로 소설 쓰는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심심풀이가 이미 당신의 삶의 중심이 돼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스스로 택한 일이긴 하지만 이제 당신은 소설 쓰기를 당신 마음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럴수록 거듭 반성해야 한다. 왜 쓰려고 하는가? 그러나 대답할 말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뭔가 미진하다는 생각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게 될 것이다. 먼저 일기부터 쓰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소설을 쓰게 될 것이다. 일기는 소설의 시작점이다. 일기장을 한 장씩 채워 나갈수록 여러분의 상상력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