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 내가 살아온 이야기

글 쓰는 사람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소설 쓰는 일 말고는 다른 어떤 일에도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 쓰는 일이 가장 즐겁다. 내 재능의 발휘는 역시 소설 쓰는 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자기 검증이 끝난 당신은 이제 자신이 달라붙어 파먹어야 할 영감을 찾기 위해 고심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

무엇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족들이 밖에서 돌아올 시간쯤이면 그 집의 주부는 식구들 입에 맞는 음식을 만들 준비로 마음부터 바쁘게 마련이다. 물론 그 주부는 그날 아침부터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음식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계속 고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나갈 때까지도 그 고민은 게속된다.

그럴 때 음식 만드는 솜씨 가 있고 없음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우선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식구들 입맛에 맞을 어떤 음식을 선택한 뒤 그 재료를 사러 시장에 달려가서도 고민은 계속된다. 찌개를 하되 육류로 할 것인가 아니면 해물로 할 것인가?

이처럼 주부가 저녁 반찬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듯 소설을 쓰려는 당신도 이제 무엇을 쏠 것인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될 그런 고민의 시간을 앞에 놓고 있는 것이다. 독자가 자기 입맛에 맞는 작품을 선택해 읽는 것처럼 작가도 독자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고민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또한 선택한 것 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그 무엇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쓸 것인가에 낭비한 세월

어떻게 쓸 것인가에 집착하지 말라. 필자가 만난 신인작가 한 사람은 이제 작가가 되고 보니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두려움보다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데 신경을 더 쓰 게 된다는 말을 했다. 그것은 무엇을 써야 세상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좋은 작품을 써낼 것인가 하는 작가로서의 당연한 욕심일 것이다.

물론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물음에는 소재적인 측면에서의 무엇과 주제로서의 무엇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을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쓰는 쪽에서 볼 때 소재와 주제는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부가 정성껏 만들어 놓은 요리에서 그 재료와 솜씨를 혹은 그 요리를 만드는데 쏟은 정성이 어떠했는가를 따로 떼내어 생각할 수 없듯 소설도 쓸 거리가 있으면 거기에 맞는 작가의 어떤 의도와 그 의도를 살릴 수 있는 솜씨가 자연스럽게 따라붙게 마련인 것이다.

소설을 처음 쓰려는 작가지망생은 대체로 무엇을 쏠 것인가 하는 것에 별로 고민을 하지 않고 어떻게 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더 집착하고 있음을 혼히 볼 수 있다. 물론 습작 과정이니까 이것저것 이야기거리가 될 만한 것을 찾아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를 모색하는 일이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처음 시집간 새댁이 시집 식구들의 식성에 맞는 음식울 알아내기 위해 여러 면으로 고생을 하듯 자기 작품을 읽이줄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것은 처음부터 독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독자의 눈치를 살피라는 얘기와는 문맥이 다른 얘기다.

그것은 어느 음식이 식구들의 식성에 잘 맞는지 그것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이 반찬이야말로 내가 가장 자신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모색 과정으로서의 눈치보기일 것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 이 문제를 가지고 고심하기 시작한 당신이야말로 작가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쉽게 써내려간 소설이 쉽게 읽힌다

당신 스스로가 택한 고행의 그 첫 걸음 그것은 바로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몸에 맞는 옷을 입어라. 아무리 좋은 웃도 몸에 맞지 않으면 그것을 입기가 거북할 뿐더러 그 옷의 가치를 찾기 어렵기 마련이다. 여러 벌의 옷이 있다고 해도 그 중에서 유달리 입기가 편한 옷이 있는 법이다. 그 웃만 걸치면 마음이 편안해져 남 앞에 나서도 자신이 있는 그런 웃이 있다.

물론 옷 입기는 유행을 많이 탄다. 철 따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옷 입기 유행은 바뀌기 마련이다.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도 대체로 그 유행에 따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옷을 맞출 때부터 그 선택을 신중히 하여 그 옷이 몸에 잘 맞는 것이었다면 그 옷은 유행과는 아랑곳없이 언제 입어도 편하고 또한 남보기에도 잘 어울려 보일 것이다. 몸에 맞는 웃은 대체로 자신의 개성이 잘 나타난 것으로 남들이 보기에 항상 새롭게 느꺼질 수 있는 그런 독창성 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소설쓰기도 마찬가지다. 자기 몸에 맞는 자신의 개성을 유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그런 무엇을 찾아 써야 한다. 남의 작품을 많이 읽다 보면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기 마련인 것처림 자기가 쓰려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 이 이야기만은 내가 자신있게 할 수있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찾아 쓰는 일이 곧 몸에 맞는 소설쓰기가 될 것이다.

즉 이 이야기라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그런 무엇을 찾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자기 몸에 잘 맞는 옷은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듯 자기 재능에 잘 맞춘 소설쓰기는 그 작가의 창작 행위를 신명나게 하는 그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소설의 요건

좋은 소설이란 할 말, 쏠 말을 제대로 해낸 소설을 의미한다. 물론 할 말, 쓸 말이란 소설의 주제적 측면을 말한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남한테 들려줄 때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같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어떤 독자들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작은 사건 하나가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소설미학 자체의 의미구조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든 그런 의미들이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할 말, 쓸 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어떤 이야기 구조에서 찾을 수 있는 그 작가의 사상이나 철학 등은 그 이야기를 만든 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론 자신의 사상이나 철학을 전달하기 위해서 소설을 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꾸밀 때는 반드시 그 작가의 인생관이 이야기를 지배하게 되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그것은 그 작가가 평소에 어떤 문제에 대해 갖는 관심과 그 인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작가의 어떤 신념이 이야기의 의미를 결정짓는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

소설은 인생에 대한 여러 문제를 논리나 철학의 깊이가 아닌 개연의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혹은 감동의 차원에서 다루기 때문에 다뤄지는 영역 또한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그러나 인생의 근원적 혹은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문제쪽에 더 관심을 갖느냐 아니면 보다 가시적인 현실문제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냐 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죽음이라는 인간한계의 문제, 인간의 원초적 죄의식과 타락의 문제, 그 구원의 문제, 사랑과 미움, 증오 화해의 문제, 혹은 무속적 신비의 세계, 초인격적인 성자에 대한 경외심 등등이 앞의 것에 해당 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제도의 모순이나 부조리의 고발과 폭로, 폭력에 대한 성토, 각 계층간의 갈등, 농촌문제, 노동문제, 도시빈민문제, 교육문제, 노인문제, 청소년문제, 산업화 과정의 인간성 상실과 그 회복의 문제, 분단현실과 거기서 비롯된 갖가지 비극의 진단과 통일 지향적 의지 등등 주로 현실 인식의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천착해 들어가는 것이 나중의 것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소설은 작가의 생각과 관점을 반영하다

이런 다양한 관심 중에서 어떤 것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둘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무엇을 쓸 것인가’이다. 물론 작가라면 어느 것이나 다 쓸 수 있어야 한다. 실상 작가들은 그 모든 문제를 다 그리고 싶은 욕구로 시달린다.

그러나 욕심을 낸다고 해서 그 다양한 세계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현명한 작가는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영역과 그 한계를 빠르게 터득한다. 작가의 대부분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어느 한 가지를 형태에 집중적으로 달라붙는다.

다루기에 자신 있는 문제라야 그것을 조금 더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줄 수가 있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어떤 문제에 집요하게 달라붙어 오직 그 문제의 심화 확대를 위해 초지일관 할 수 있다면 그 작가는 확실히 작품의 성공 여부와는 관계 없이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